모노
백지한
신도 야근을 하나요?
#f5c567
채유하는 그의 눈을 가만히 바라본다. 저와 달리 노랗게 빛나는 눈 색에 묘하게도 한 번 사로잡히면 영 시선을 떼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이는 그가 저를 바라보고 있기에 느껴지는 감각이 아니었다. 그하고 시선을 마주하면, 그대로 얼어붙은 듯이 저는 가만히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도 무섭지 않고, 그가 먼저 시선을 돌리면 저도 모르게 따라 가게 되니 말 그대로 무언가에 홀린 상태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무기인 점을 생각하자면 뱀에 홀렸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데.
"왜 그렇게 쳐다 봐?"
"…제가요?"
"응, 아까부터 나한테서 전혀 시선을 떼지 않잖아."
"내가 그랬나…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백지한 씨는 아까부터 계속 시선을 돌리면서."
"그야… 네가 쳐다보니까."
백지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날이면 매번 그랬다. 제가 그를 왜 바라보는지조차 잘 모르겠는데, 그를 좋아해서 바라보는 일이라면 그가 제게서 시선을 피했을 때 저도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게 마땅했다. 다만, 이런 때는 꼭 바보같이 멍한 얼굴로 백지한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기 때문에 절로 드는 민망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저를 잘만 쳐다보면서 꼭 제가 먼저 쳐다보면 쑥스럽다는 듯이 시선을 피하는 백지한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쪽은 되고, 나는 안되는데. 바라보면 닳는 얼굴도 아니지 않은가. 시선만으로 닳는다면 저는 이미 당신의 시선에 얼굴 절반이 사라졌을 거라고 따지고 싶었다. 막상 제 쪽에서 피하면 피하지 말라며 불만을 내세우는 이가 이럴 때는 제 말조차 제대로 듣지 않는다. 다른 날이었으면 넘어갔을 일이나 오늘따라 괜히 트집을 잡고 싶은 건 아주 작은 변덕이었다.
"눈이 좋아서요."
"눈? …내 눈?"
"네, 백지한 씨 눈이요."
"그런 취향이 있었어?"
하여튼 취향 얘기는. 채유하는 그의 말에 굳이 따지자면 그런 취향이 있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갖고 있어서 좋아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그가 좋아할 건 알고 있으나 당장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제 말에 대꾸하면서도 저를 향하지 않는 시선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채유하는 백지한의 시선에 따라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눈에 꼭 제가 담길 필요는 없어도 그의 눈을 보고 싶은 건 여전했기에 어쩔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제 쪽에서 계속 시선을 떼지 않자 작게 한숨을 내쉰 백지한이 다시 시선을 움직여 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익숙하게 보이는 건 강렬한 금빛의 눈색이었다. 사람의 눈빛은 또다른 대화가 된다고 했던가. 저를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와 같았다. 저를 원하는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어 부담스럽다가도 그에게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면 들뜨기도 했다. 이번에도 백지한은 그가 가진 금색의 눈으로 저를 강렬히 원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게 좋아서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면 백지한은 살짝 놀란 듯하다가도 그가 느끼는 감정을 저한테 툭하니 내뱉었다.
"난… 네 눈이 더 좋아."
"네? 뜬금없이 무슨 말이에요?"
"뜬금없지않아. 항상 생각하고 있었어."
"아니, 지금 상황에서는 뜬금없잖아요."
"네 눈이 좋아. 네 머리카락도, 코도, 입술도, 손도…"
"으악! 그만, 그만!"
아까까지 시선을 피한 게 내숭을 떤 사람처럼 제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내뱉는 칭찬에 결국 먼저 고개를 돌린 건 채유하였다. 저 사람은 뜬금없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지금 그 어느 타이밍에도 제가 좋다고 말할 상황은 아니었는데. 당신의 좋은 부분에 대해 얘기하던 건 제 쪽이지 않은가. 그새를 못 참고 끼어들다니. 툭하면 들어오는 애정멘트를 도저히 무슨 수로 이겨야 하는 건지.
"네가 먼저 좋다고 얘기했어. 나도 너에게서 좋아하는 부분에 대해 얘기했을 뿐이야."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는 태도에 채유하는 시선을 슬 굴렸다. 그러니까, 그런 얘기가 아니래도요. 나는 당신이 내게서 시선을 돌린 게 불만이었을 뿐이고. 이러나 저러나 해도 다시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고. 제가 당신에게 붙잡힌 일처럼, 저도 당신을 붙잡으려고 시선을 끌었을 뿐인걸. 애초에 당신은…
"애초에 백지한 씨는 저의 어떤 부분이든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응."
"곧장 그렇다고 답하지 말고요."
"사실인 걸 어떡해."
거 봐, 내가 검은색 머리카락을 갖든, 파란색 머리카락을 갖든 별로 상관없으면서. 저를 향해 솔직한 맘을 내보이는 거라면, 이래서는 끝나지 않을 게 뻔하다. 채유하는 지금 순간을 이겨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저 칭찬에 절대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채유하는 일단 손을 뻗어 백지한의 양손을 붙잡고 마주 보았다. 제 쪽에서 손을 먼저 잡자 당황한 백지한의 모습이 있었다. 하지만 이걸로 끝낼 게 아니었다. 흡사 옛날 예능 프로그램에서 당연하지, 라는 게임을 하는 일처럼 어떠한 말에도 흔들리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
"단순한 노란색이 아니라서 좋아요.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너무 밝지도 않고 약간 톤이 낮은 색이라 백지한 씨하고도 어울린다고 할까…?"
"응."
"백지한 씨가 이무기라는 건 알고 있지만, 뱀의 눈처럼 생긴 게 신기하고. 그게 매력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
"또… 항상 나를 향해 있는 게 좋고…"
"더 해봐."
"그냥…"
그냥… 당신의 일부분이라서 좋아. 단순하게 떠오른 이유를 내뱉을까 고민하던 찰나, 늘어놓는 말을 순순히 듣고 있는 모습에 채유하는 백지한을 바라보았다. 제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있는 백지한이라니… 그보다 더 해보라는 게 무슨 말이야? 그제서야 저를 보며 웃음을 겨우 참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따지고보면 손을 이렇게 먼저 잡는 일도 잘 없는데. 그를 이기겠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와 일단 칭찬을 늘어놓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평소 하지 않는 짓을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저, 저렇게 여유롭다는 듯이 웃지 말란 말이야…! 그하고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데, 왜 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지.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빼자 이번에는 백지한 쪽에서 손에 힘을 준 채로 놓지 않았다.
"끝난 거야?"
"끝, 이고 뭐고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였거든요?"
"듣기 좋았는데. 네가 해주는 칭찬.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거야?"
"그런 게 아니고요. 정말 문득, 어쩌다가, 백지한 씨를 보고 있다보니 생각났어요."
"네가 좋아해주면 나도 좋은데. 근데 난…"
"아, 알았어요! 그만!"
그가 이어서 할 말이란 건 정해져 있지 않은가. 제 칭찬을 듣는 일이 싫은 건 아니지만,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는 건 여전했다. 게다가 저는 그처럼 특이한 눈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검은색 눈이 좋아봤자 얼마나 좋다고. 애써 돌리는 시선에 상황이 역전된 일처럼 백지한은 여전히 채유하한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가 가진 특유의 금색 눈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그를 보지 않고도 느껴졌다. 결국 그에게 또 진 셈이다. 한참 헤매던 시선은 결국 백지한을 다시 향한다. 어차피 제게서 떨어지지 않는 시선이라면.
"그 눈, 차라리 나 주면 안돼요?"
"처음부터 네 것이었는데."
"내가 뭔 말을 못해요."
"가져.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다 줄테니까."
눈도, 손도, 입술도. 그게 뭐가 됐든 다 줄게. 속삭이듯이 내뱉는 말에 채유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저를 향한 눈, 저만의 시선, 당신이 가진 금색의 눈이기에 홀린 듯이 바라보고 이토록 원하게 된다고 저 또한 그를 향해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