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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GREY

사보

원피스

#FFE296

日午

 

 

 

너는 타오르는 듯한 눈빛을 하고 서늘하게 사람을 에워싼다. 검붉은 기세가 무색하게도 차가운 금속성의 빛깔은, 현란한 색으로 누군가를 현혹하곤 진심을 내보이려 하면 무기질의 형상으로 상대를 조롱하는. 무엇이든 가져다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떤 것도 양보 않는 저주받은, 그런 단단한 황금을 닮아서.

 

나는 그 권위와 부의 상징을 녹여버리고 싶어 네게 다가가는데, 손에 닿는 것도 마치 네가 허락하여 가능하다는 듯 보이는 그 교만한 태도가 나를 분노하게 만든다는 걸.

 

나의 정의로운 결의마저 고상하게 추악하게 비아냥대고는

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기세와 여유가 경멸스럽다.

솔직히 말하면, 내 진심이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게 불쾌해.

 

그러나 너를 완벽히 증오하지만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네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리라.

 

너는 부조리에 부조리로 맞선다. 권위에 권위로 대항하며, 불의를 파훼하는 방식은 잔악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고루하신 고상한 노친네들보다는 그야말로 진취적이라, 칼을 들어 본인의 머리에 왕관을 씌움으로써 기존 체제를 어그러뜨린 여자. 남성 장자의 전유물이었던 것을 쟁취했던, 그럼에도 너 역시 기득권의 일부였기 때문에 대단히 정의롭지도 자애롭지도 않은 욕망 많은 부덕한 황제. 너는 모순으로 정의된다.

 

너는 네 머리 위의 천장을 깨는 게 골몰하지만, 네 발밑의 바닥을 부수는 데에는 무심하다.

 

네게도 변명거리가 있겠지. 너는 그런 식으로 태어났겠다. 당연하게도 계급이 있는 세상에서 지배자로 태어난 것들답게도, 굳이 체제를 바꿀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네게는 편의를 봐주는 체계가 우리에겐 구속과 다름없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솔레이유 성(聖). 그렇기에 나는 당신을 가엾게 느낀다. 너는 필멸의 육신을 입었으나 불멸성의 특권인 자라지 않고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황금 요람에서 태어났다. 대단하고 신적으로 보이는 후광은 전부 능력과 계급에서 기인하지만, 지고한 감각을 일으키는 것들이 결국 스러지는 육체에 종속되어 있어서. 영속할 것처럼 보였던 거대한 섭리나 권력도 일생과 함께 늙고 약해지겠지.

 

그 태생적 불균형이 너를 신이 아닌 사람으로 만든다는 걸 아나? 네가 말하는 고작 사람, 말이다. 신분제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결국 인간. 죽이면 죽는.

 

네가 나를 부른다.

네 알량한 자비로움이. 네 권위적인 추진력이.

 

내가 뒤바뀐 가치관을 체화하지 못했다면, 가증스러운 내 가족과 비슷하게 살아왔더라면, 네 삶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밟아왔을 나를. 그러나 지금은 너보다 많이 알게 된 나로 거듭났기에. 너를 동정하면 네가 화를 내겠지만, 너는 사람이라 애처롭다.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어그러뜨렸는데도, 부조리함은 영속하였기 때문에. 마리, 이미 체제의 파괴를 한번 본 군중은 멈추지 않는다. 왕의 목을 내잘라 걸 때까지 주저하지 않지. 네가 문학 속 의롭고 용맹한 기사인 양 부정함을 해소해 줄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으니까.

 

너는 차갑게 타오르는 듯하다.

사랑하는 마리, 나는 이내 차게 식어갈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솔레이유 성(聖), 불을 당기는 것은 불의 제왕이므로.

네 시대는 언제나 왕정에서 혁명으로 흐르는 과도기이다.

네 황금 옥좌가 불살라 녹아들고, 네 목이 거두어지는.

내 손에 처형당할 왕에게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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