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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

라비

D-gray man (디그레이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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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색에 대해 떠올리자면, 검은색, 파란색, 초록색.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오는 삶이 아니었기에 그랬던 걸까.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삶 속에서 제 시선에 오래 담기는 색은 대부분 한색이었다. 선택할 겨를 없이 주어진 방에, 주어진 침구. 누구를 위한 방이었는지도 모르는데 어릴 적 지내온 방의 색은 참으로 어두워서 제가 가질 수 있는 색이란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니 제 삶에 주황빛 같은 색은 영영 끼어들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겼다. 저 색은 너무 밝아. 적어도 나를 위한 색은 아니야, 하고 보이는 색에 외면하는 때가 많았다. 유하는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주황빛 머리가 이리저리 움직이면 이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유하의 눈 안에는 주황빛이 사라지는 법이 없었다. 어쩌다 이 정도로 좋아하게 된 걸까. 유하는 작게 중얼거렸다. 분명, 이 정도로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맞지 않은 게 한두 개도 아니었다.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와 비교하는 저의 모습은 초라하고 볼품없어서 무턱대고 성질을 부렸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의 성격이 저와 같다면 치를 떨며 그 사람과 거리를 두려고 했을 텐데. 저 사람은 또 뭐가 좋아서, 제게서 거리를 두지 않았는지. 그게 계기가 되어 감히 그를 제 연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경에 이른 순간이 믿기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그도 마냥 저를 좋아했던 게 아니라 오기를 부렸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고마운 마음은 있었다. 그가 고집을 부리지 않았으면 영영 저 주황빛을 발견하지 못했을 제가 있었겠지. 발견한 지금은 저 주황빛을 평생 좋아하게 될 거란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절로 드는 의문이 있었다. 저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그의 주황색과 초록색을 좋아하는데. 과연 그는 어떠한 색을 좋아할까, 하는 의문.

 

 

 

"좋아하는 색? 역시 주황색이려나. 내 머리색!"

"역시 그런 거네요…"

"…나 뭔가 잘못 말했어?"

"아뇨, 그럴리가."

 

 

 

좋아하는 색이 같다면 그 또한 기쁜 일이니까요. 애초에 검은색과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그가 깨끗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전쟁 속에 끼어든 이상, 밝은 삶이란 게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그렇지만 그는, 라비는 제게 있어서 빛이고 밝은색이고, 따스한 색이었다. 입고 있는 제복이 아무리 어두운 색이라고 해도 그가 어디에 있든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밝게 빛나는데. 좋아하는 색이 검은색이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을 듯했다. 검은색은 저를 이루는 색의 전부인데도. 저는 여전히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기에 그의 대답에 아쉬움을 느끼지 않는 걸까. 제 머리카락을 쭉 당긴 유하는 고개를 기울이는 라비를 향해 웃어 보였다. 별 거 아니었어요. 시덥잖은 질문이었죠, 하고. 제 반응을 기다리는 건 아니었는지 라비는 고개를 내젓고 입을 열었다.

 

 

 

"유하도 좋아하지 않아? 검은색."

"좋아하냐고 하면 그렇다고 답하겠지만요."

"당연히 머리카락 색이니까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내 생각인가?"

"아무래도 그렇죠. 그런 이유로 검은색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흐음, 그럼 어떤 이유로 좋아해?"

"…그러게요."

 

 

 

그냥 그렇게 살아와서, 라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제 과거를 꺼내고 싶지 않았고, 늘 검은색을 마주했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이유가 쉽게 납득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저는 검은색을 좋아하는 게 아닌 걸까? 제가 가진 색이기에 선호하지 않고, 익숙해서 곁에 뒀을 뿐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려나. 싫었으면 고르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막상 검은색을 포기하면 저를 또 포기하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겨우 색이란 게 뭐라고. 저란 사람을 대입하고 마는지. 반대로 생각해보면 왜 주황색을 좋아하게 된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를 이룬 색이지 않은가.

 

 

 

"그러고보면… 이 색이 참 좋다고 여긴 건, 주황색이 처음이었어요."

"응? 주황색? 그거 설마… 이유가 나야?"

"네에, 당연한 걸요. 라비가 좋으니까 주황색도 좋아해요. 초록색도 좋아하고…"

"유하는 가끔 낯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니까…"

 

 

 

그러면 검은색이라고 말 안 한 내가 머쓱해지는데. 라비는 제 뺨을 긁적였다. 검은색이 싫은 건 아니지만, 그게 유하의 색이라고 여긴 탓은 없었다. 제 연인의 머리색과 눈색이 전부 검은색인 건 알고 있다. 워낙 짙은 색이라 한번 보면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그 색이 너무 깊어 빠지기 쉬울 거란 생각은 지금도 종종 하고 있는 생각이었다. 짙은 검은색의 머리면서도 어둡지 않다고 여겨지는 건 단순히 그를 좋아하기 때문일까? 좋아하는 색이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주황색이라고 말할 마음은 변함없었다. 뒤늦게 검은색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일도 어딘가 어색했다. 생각해보면 주황색을 좋아한다고 해도 사실 나를 좋아하는 거잖아. 이런 말을 내뱉는 일은 영 쉽지 않지만. 라비는 괜히 헛기침을 내뱉었다. 흠, 흠.

 

 

 

"검은색을 좋아하냐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유하가 가진 색은 좋아해."

"응?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유하가 라비의 말에 의문을 내뱉는다. 제 머리카락은 검은색인데, 제가 가진 색을 좋아하지만 검은색은 아니라는 말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순간 제가 가진 색은 검은색이 아닌가 하는 얼빠진 생각을 하자 라비는 좀 더 설명하려는 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음, 그러니까~ 내 머리카락 색이 주황색이긴 해도 세상에 존재하는 주황색이 전부 같은 색은 아니잖아? 검은색도 분명 마찬가지고."

"그렇죠. 칸다의 머리색도 검은색이지만 저랑 느낌이 많이 다르잖아요."

"응, 나는 검은색이 제일 좋아하는 색은 아니지만~ 유하의 색이라면 좋아해."

"근데 그건 제가 가진 색이 검은색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거네요."

"그렇지? 내가 좋아하는 건 너인 거잖아. 유하도 마찬가지 아냐?"

"그거야… 그렇네요. 나도 라비를 좋아해서 주황색이 좋아."

"내가 노란 머리였으면?"

"노란색을 좋아했을지도."

"역시 그렇지?"

 

 

 

되묻는 말에 유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는다. 라비의 말을 곱씹으면 저도 마찬가지다. 주황색을 좋아하는 이유에 다른 이유란 없었다. 따뜻하다는 이유도 아니었고, 색만 보고 어떠한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었다. 살아오면서 가장 처음으로 내린 선택마저 오로지 라비로 이뤄졌다는 걸 깨닫고만 순간이다. 검은색도, 파란색도 언제나 저와 함께였으나 제 손으로 직접 찾은 적은 없었다. 교단복의 색도 검정이 아니었다고 해도 불만 없이 입었을 테고. 라비를 알게 된 이후로 저도 모르게 주황색에 손을 뻗게 된 자신이 있었다. 주황색을 보면 너를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아. 너라면 부정할 지도 모르지만, 내 세계는 너를 안 순간부터 존재하는걸. 제 세상이 온통 주황색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어떠한 불만도 없을 게 당연하다. 오히려 주황색으로 꾸미고자 할 지도 모르지. 내 세계는 오로지 너 뿐이고, 네가 가진 색이 주황색이라면 제 세계가 주황색으로 물들이는 일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저는 단순히 주황색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라비가 가진 주황색을 좋아하는 거였구나. 어쩌면 모순적인 말인지도 모른다. 그거야말로 주황색을 좋아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그 말에 부정할 말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평생 좋아하게 될 거란 부분에서 바뀔 건 없으니까. 좋아하는 색에 대해 누군가 물어본다면 이제 저는 이리 답할 수 있겠다. 라비가 갖고 있는 주황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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