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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최

펭귄

원피스

#D12b19

 있잖아, 샤치. 총량의 법칙이라고 알아? 생뚱맞은 목소리에 바닥을 쓸어내던 샤치가 선글라스 뒤편에 감춰진 눈을 깜빡거렸다. 청소하다가 말고 갑자기 웬 이상한 소리야? 총량의 법칙? 의문 가득한 목소리는 안중에도 없는지, 쿠지라는 그대로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는 줄줄,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게 말이야⋯. 그리고 샤치는 예감한다. 아, 이 놈⋯ 또 시작이다. 지긋지긋한 이야기만 줄줄 수도꼭지가 고장 난 것처럼 토해내기 시작하는 일명 '쿠지라 타임'의 시간이 기어코 오늘도 찾아오고만 것이었다. 샤치는 쿠지라가 입을 연 시점에서부터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지 모를 단어로 서문을 두드린 이상, 벗어날 길은 없었다.

 

균형이라는 것도 왼편으로 기울면 자연스럽게 오른편으로 기우는 법이고, 무언가가 마이너스가 된다면 무언가는 플러스가 되는 법이고, 무언가를 성공한다는 게 있으면 당연하게도 무언가를 실패하는 것도 있잖아. 그런 게 바로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아닐까? 어디 한 곳에 몰아넣어지는 것도, 어느 한 곳이 텅텅 비는 것도 없이 두 가지의 것들이⋯ 전체적인 것들 공평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아지는 것⋯⋯ 그게 바로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갑자기 그런 생각은 왜 들었는데? ⋯애초에 그거, 대체 어디서 주워들은 건데?! 어디서 들은 이야기로 주절거리지 말라구, 쿠지라⋯.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샤치는 푹푹 한숨을 내쉰다. 보통 저런 식으로 시작한 쿠지라 타임은 대게 어떤 문장으로 끝나는가. 그 또한 샤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몇 년의 시간을 함께해오면서도 전혀,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결론. 어째서, 대체 왜⋯⋯. 샤치는 속으로 그 문장을 함께 내뱉었다.

 

 "내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 걸까?!"

 '내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 걸까⋯⋯'

 

 그래. 어련하시겠어. 아니, 샤치. 내 이야기 좀 제대로 들어보라니까. 나 지금 굉장히 진지하단 말이야. 어째서 그만큼의 사랑이 돌아오지 않는 건지 모르겠어, 정말로. 응? 야, 샤치. 어이! 딴 생각 하지 말고 진지하게 내 고민에 대한 상담을 해달라고! 샤치! 샤아아치이이이! 샤치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대체 어쩌다가 자신이 이런 포지션에 위치하게 된 건지. 어째서 소꿉친구와 동료 사이의 사랑에 대한 고민 상담을 내가 맡아서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제발 두 사람 일은 두 사람 사이에서 해결하란 말이야! 차마 내뱉지 못할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울린다⋯⋯. 알았어, 진지하게 말하면 되는 거지? 쿠지라, 내 생각엔 말이야⋯⋯⋯

 

 "샤치, 쿠지라! 제대로 청소하고 있긴 한 거지, 너희?"

 "네, 당연하죠, 펭귄 씨!"

 "⋯⋯⋯"

 

 쪼르르, 펭귄의 곁으로 능청스레 다가가는 쿠지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샤치는 속으로 생각한다. 그러는 너도 왜 내가 들어주는 만큼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거냐⋯. 총량의 법칙이 거기서부터 어긋나고 있잖아⋯⋯⋯.

 

 

 

 

 

 

의 법칙

쿠지라 X 펭귄

 

 

 

 

 

 

 Step 1. 동료

 

 

 "⋯⋯그러니까, 진지하게 답 좀 해봐."

 "그 말을 대체 몇 번째로 하는 건지 기억은 하고 있는 거지?"

 

 이제는 정말 질린다는 목소리로 샤치가 답하자, 쿠지라의 얼굴이 웬 똥 씹은 표정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샤치는 저 표정을 아주 잘 알았다. '동료의 이 정도 고민 상담도 제대로 해주지 않냐'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샤치는 저 표정을 굉장히, 매우, 아주 싫어했다. 저 표정에 대해 한 마디라도 하려고 하면 어느샌가 싱글싱글 웃는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나는 모르는 일이요, 하며 모르쇠를 시전해버리는 것이 매번 반복되기 때문이었으므로. 참⋯ 사람 다루는 것에 도가 튼 사람이었다, 쿠지라는. 그런 사람이 지금 누구 한 명 때문에 일희일비하며 하루하루 죽어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하트 해적단의 전원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여름섬이 가까워짐에 따라 느껴지는 여름의 열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자신의 정신 상태 때문인 건지 갑판에 스며들 것처럼 대자로 뻗어버린 쿠지라를 내려다보면서 샤치는 정말이지 새삼스러운 걱정이 들었다. 애는 대체 이런 식으로 굴 거면서 왜 이 해적단에 들어온 걸까⋯⋯. 처음 쿠지라를 봤을 때부터, 하트 해적단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샤치가 이어온 생각이었다. 하트 해적단에 들어오고 싶은 이유가 사랑에 빠져서, 라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일 때⋯ 샤치는 쿠지라라는 인간이 자신들을 속이려는 해군이나 현상금 사냥꾼, 또는 캡틴에게 사랑에 빠져버린 사람 또는 단단히 미쳐버린 사람⋯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하트 해적단에 오고 나서 곧바로 사랑 고백 따위를 준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의미였다. 허나 현실은⋯ 조금, 어쩌면 꽤 많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다 달랐다. 쿠지라는 빙빙 도는 위성처럼 주변을 따라다니기만 했고, 열렬한 사랑의 구애나 직접적인 사랑 고백 따위의 것들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는 당신을 좋아해요⋯ 같은 은유적인 표현조차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샤치는 그 사실에 꽤 당황했었다. 그럴 거면 대체 왜? 주변에 있어도 기쁘다, 주변에라도 있고 싶다는 의미였던 건가? 그런 샤치의 머릿속을 이차적으로 강타하고 있는 사실은, 그 대상이 캡틴이 아니라 자신의 소꿉친구인 펭귄이라는 사실일 것이 분명했으니⋯⋯.

 

 "고백이라도 해보라니까!"

 "그런 거⋯⋯ 못하는 게 당연하잖아! 샤치는 바보야?! 바보인 거야?!!"

 "왜 못하겠다는 건데? 매번 이유도 안 말하고."

 "그거야⋯⋯⋯ 샤치한테는 안 말해줄 건데."

 

 선글라스 너머의 눈이 쿠지라를 노려봤다. 그런 강렬한 시선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쿠지라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다. 샤치는 언제나 쿠지라라는 사람을 알 수 없다고 평가했다.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고, 무슨 생각으로 무슨 행동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이유도, 사랑한다는 작은 고백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건지도. 샤치로서는 쿠지라는 하나도 아는 게 없는 미상의 존재나 다름없었다. 타 선원들과 비교하자면 적은 기간이겠지만, 그래도 전체를 보자면 적지만은 않은 기간을 동료로 함께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평가는 여전히 바뀔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쿠지라는 대체 왜 저러는가. 제대로 설명도 해주지 않는 주제에 왜 매번 나를 상담처로 삼는 것인가. 성격이 좋은 편에 속하는 샤치였지만⋯ 이 정도로 그것들이 쌓여가면, 보살이라고 한들 화낼 것이 분명했다. 정말로, 진짜로! 이건 샤치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짜증을 내는 것도 다른 사람에 비하면 한참은 늦은 것이었다. 샤치의 은혜⋯ 그런 건 쥐뿔도 모르는 쿠지라는 지금 저렇게 대자로 뻗어있다.

 

그냥 죄다 고발해버릴까⋯⋯. 가끔 그런 충동이 고개를 들이밀곤 했지만, 금세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으으응⋯⋯⋯."

 "⋯⋯아~오, 진짜!"

 

 들고 있던 대걸레는 쿠지라의 머리를 강타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데굴데굴 고통을 호소하며 바닥을 굴러다니는 쿠지라는 안중에도 없는 듯, 샤치는 그 모습을 마냥 내려다보며 이어서 말할 뿐이었다.

 

 "아니, 네가 표현하지 않는데 대체 그 쪽에서 뭘 해주길 바라는 거냐고~!"

 "그게⋯ 뭐라고 해야 할까,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무언가를 바란다고 해야 할까, 차마 내가 표현할 자신감도 없지만서도 상대방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망설여진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내가 직접 차마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그런, 왠지 모를, 뭐라고 할만한 그런⋯⋯⋯"

 "말을 똑바로 해―!!!!"

 

 와아아아아악―!! 쿠지라의 비명소리가 울린다. 너희, 청소 제대로 하라니까 또 뭘 하고 있는 거야!! 펭귄의 목소리가 들리고, 쿠지라는 언제 그랬냐는 듯 대답한다. 샤치, 샤치가요! 저 잘하고 있어요!!! 샤치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지긋지긋했다. 매번 반복되는 이 장면에 대한 싫증조차도 이제는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샤치는 답답함을 느꼈다.

 

 

 

 

 

 Step 2. 캡틴

 

 

 똑똑. 한 객실의 객실 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면, 익숙한 형상의 누군가가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그 사람이 고개를 들면, 노란색의 금안과 마주한다. 잘못한 것 하나 없음에도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킬 수 밖에 없는 분위기. 쿠지라는 이곳에 발을 들이자마자 조금은 후회했다.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구요⋯⋯ 혹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조금 앉아있어라. 금방 끝나니까."

 "예엡, 캡틴."

 

 쿠지라는 남아있던 근처의 의자에 앉아서는 주변을 둘러봤다. 사실, 트라팔가 로우의 방에 들어온 적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 상황은 대게 고개만 쑥 내밀고 사라지거나 하던 것들이 전부인지라, 보지 못했다고 해도 거짓은 아닐 터였다. 정갈한 공간. 그런데도 사람의 흔적이 묻어나오는 분위기. 그리고 은은한 커피 향. 쿠지라는 커피를 타는 펭귄의 뒷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잠깐, 캡틴에게 질투를 느끼는 선원. 대체 어디의 누구냐. 쿠지라는 머릿속 자신의 머리통을 강하게 내려쳤다. 아무리 그래도 공과 사를 구별 못할 정도의 선원은 아니었으니까.

 

그냥,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의 아쉬움이었다. 넘버원이 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물론 넘버원이라는 단어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만한 무게가 있었다. 무려 본인의 입을 통해 직접 들었던 이야기. 자신과 헤어졌었던 그 시간들은 결코 짧지 않았고, 보지 못했던 팔의 흉터로 인해 무언가의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것이야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지만⋯ 펭귄에게 그 시간은 자기 자신보다도 더 길고 깊었던 모양이었다. 생과 사를 넘었던 하나의 순간. 그 순간을 자신이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거무죽죽한 감정의 선은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을 정도의 것이었다.

 

제정신이 아니지. 쿠지라는 쓰게 웃었다. 눈앞의 캡틴은 당연하게도 펭귄의 구세주였고, 구원자였고, 펭귄 자신의 목숨은 물론이요 샤치의 목숨까지도 살려준 평생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런 사람을 자신의 넘버원으로 삼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래, 암. 그렇고 말고. 쿠지라는 그런 넘버원의 자리에는 별 욕심이 없었다. 자신이 넘버원이 되지 못한다면 다 죽여버리겠어! 그따위의 감정을 가지고 살 것이었다면, 애초에 이곳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부끄러운 질투였다.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생각, 혹시나⋯ 내가⋯ 만약에⋯⋯ 따위의 상상들, 생각들, 미련들.

 

 "⋯생각이 많아 보이는 표정인데."

 "생각이 많긴 하죠."

 "그래서, 이 시간에 내 방에 온 이유는?"

 "그냥 좀⋯⋯ 상담?"

 

 탁자에서 몸을 돌려 얼굴을 마주한 로우는 가만 쿠지라를 훑어보듯 바라봤다. 자신보다도 큰 2M의 인간이 저런 식으로 몸을 쭈그려 앉아있는 꼴이란. 와중에도 나 무슨 일 있어요, 하고 대신 답하는 중인 얼굴은 로우로서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쿠지라는 현재 하트 해적단의 선원이었고, 선원을 신경 쓰는 것 또한 선장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겠지. 로우는 짧게 생각했다.

 

 "⋯⋯사랑의 표현이라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흠?"

 "아뇨, 아뇨! 음, 그게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뭐든요, 내어주는 만큼 돌아오는 법이잖아요? 그런데 내어줬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돌아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달까⋯⋯ 이, 이상하죠. 이거?"

 

 뚝. 갑작스레 말이 멈추고, 예고 없이 쿠지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다, 아니다. 그냥,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캡틴에게 괜한 소리나 하고, 좀 그랬네요. 하하. 로우는 가만 그런 모습을 지켜봤다. 사실, 로우는 이야기의 세부사항 쯤이야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쿠지라의 내부 사정 같은 것을 모르는 사람은 사실, 이 해적단 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쿠지라 말입니다, 아, 그 이야기 말이지. 그것이 자연스러운 대화의 흐름. 모두가 알지만 묵인하는 사실. 그 이유야 단순히 말하자면⋯ 그 당사자가 원했기 때문이었다. 로우는 하얀색의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한 사람을 떠올린다. 캡틴, 저도 그 정도야 충분히 알고 있어요. 자신의 소꿉친구이자 동료이자 부하가 말했던 문장. 그것이 부상한다.

 

밤 늦게 시간이나 방해하고, 죄송했습니다! 쿠지라가 의자를 정리하고,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개인의 일. 저것은 개인의 일이겠지. 그렇다면 자신이 끼어들 만한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본인이 그것을 원하지 않기도 했으니까, 이것은 필시 당연한 일일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요, 저희는요. 발걸음이 멀어진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낮게 울린다.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잖아요. 좋은 밤 되세요, 캡틴. 문이 닫힌다. 저희는 사랑 같은 걸 하러 바다로 나온 게 아니라, 캡틴을 따라서 이 바다로 나온 거니까요. 눈앞에서 두 인영이 아른거렸다. 하얀색과 검은색.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법이잖아요. 캡틴. 두 사람의 총량은 그리 다를 거 없었다.

 

트라팔가 로우는 옅은 동정을 느꼈다.

 

 

 

 

 

 Step 3. 외부인

 

 

 지금 쿠지라는, 식자재를 조달하기 위해 잠시 하선한 섬을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나름 사용하는 식자를 최대한 줄인다고 줄였고, 조절한다고 조절했는데도 불구하고⋯ 요 이상한 선원들의 넘쳐흐르는 식욕은, 차마 요리사의 본능으로 억제할 수가 없었다. 쿠지라는 가끔 요리를 잘 해도 문제구나⋯ 따위의 생각을 해보기도 했고. 어느 해적단의 노란 머리 요리사가 듣게 된다면 되도 않는 소리 하지 말라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를 법한 생각이긴 했지만, 지금 이곳에는 그 해적단도 없었고, 그 노란 머리 요리사 또한 당연히 없었다. 요즘 따라 생각이 많아졌군. 쿠지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긴, 요즘 들어 말 그대로 생각이 많아졌다.

 

상황이 상황이고, 최근의 나도 나였고⋯ 펭귄도 펭귄이었으니까. 심지어는 캡틴에게마저 찾아가 봤지만, 결국 제대로 된 상담조차도 하지 못하고 자신이 먼저 발을 빼버린 것이 비정한 현실이었다. 내뱉은 한숨은 끊길 기미 없이 길게 늘어졌다.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정신 상태가 이 모양이니, 자연스레 몸 상태마저 안 좋아진 것 같다는 감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건강한 정신엔 건강한 신체가 깃든다. 달리 말하자면, 불건강한 정신엔 불건강한 신체가 깃든다. 지금 쿠지라의 상태가 딱 그것이니.

 

그래, 이게 전부 다⋯⋯ 응?

 

 "⋯⋯너는 분명."

 "⋯⋯⋯⋯엥?"

 

 

 

 "⋯⋯⋯그래서, 혹시 넌 어떻게 생각해?"

 "생각이고 뭐고⋯ 난 어쩌다가 상담사로 전락한 거냐?"

 "네가 알겠다고 했잖아!"

 "그 상담이 이런 사랑놀이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

 

 쿠지라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고서는 무릎 사이로 자신의 머리를 집어넣었다. 상담할 대상을 잘못 정해도 단단히 잘못 정했다! 왜 여기 있냐는 질문에 "길을 잃어서" 따위를 대답으로 내세웠던 놈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허나 사람이라는 것이 급박한 한계의 상황에 오게 된다면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게 된다고 하더니만, 그 말이 진짜였다. 그 말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게 됐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인데. 거래의 대가랍시고 내주었던 술병 중 하나를 그 사이에 비워버린 녹색의 동그란 머리통은 걱정 근심 하나 없어 보였다. 자신과는 다르게.

 

술까지 사줬으면 제대로 성심성의껏 대답해 달라고, 너. 하? 나는 사랑 같은 거 모른다니까. 그럴 거면 술은 왜 받은 거냐고, 너! 술 준다면 상담 해줄 거라면서, 술만 받아내는 거냐?! 당최, 밀짚모자 해적단들은 다 똑같다니까! 쿠지라는 손에 쥐어졌던 술잔의 것을 단숨에 삼켜버렸다. 마치 진상 같은 꼴. 어째 머리가 핑 돌고 회전하는 것이, 평소보다도 취기가 빨리도는 듯싶었다. 롤로노아, 나는 지금 진지하다고. 다 꼬여버린 혓바닥은 겨우겨우 원형을 유지한 문장들을 내뱉었다. 한번 터지기 시작한 이야기인지 허심탄회한 한탄인지 모를 것들이 이어지기 시작하면, 롤로노아는 아무 말 없이 연신 술을 삼킨다.

 

 "⋯말야, 너⋯⋯ 듣고 있냐."

 "그래."

 "술이나 먹었으면서, 뭘⋯⋯. 너도 말이야, 내 쪽의 문제라고 생각하냐? 아니, 애초에 이건 대체 뭐가 문제일까. 내가 표현을 제대로 못 하는 게 역시 문제인가. 내가 제대로 표현을 할 수 있게 된다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뭐라도 바뀔 수 있을까?"

 "⋯나는 사랑도, 네놈도, 그 놈도⋯ 전부 잘 모르지만."

 

 조로는 들고 있던 술병을 내려 놓았다. 이것으로 여섯 병째였다. 번뜩이는 회색의 눈동자가 가만히 쿠지라를 내려보면, 쿠지라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역시 어딘가의 부선장이라는 직위는 허투루 단 것이 아니겠지. 본능적으로 침을 삼켰다. 이런 괴물에게 이런 소리나 하고 있다니, 나야말로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한 거 아닌가? 쿠지라는 최악의 상황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을 떠올렸다. 지금 당장 저기 저 롤로노아 조로가 감히 나의 시간을 방해하냐! 라면서 칼을 꺼내 드는. 물론 쿠지라 또한 조로가 그럴만한 위인은 아니라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가끔 세상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문제를 따지자면, 네놈들 전부 문제라고 생각한다."

 "⋯⋯뭐?"

 "한 놈은 나아가기를 주저해서 멈춰있기를 자처하고 있고. 한 놈은 단순히 관망하는 태도지. 오히려 이쪽은 바뀌지 않는 현재의 관계가 이어지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사람 둘이서 대체 뭘 하고 싶은 거냐, 너는?"

 "⋯하?"

 "어느 쪽도 바뀌길 원하지 않으면서 뭘 바꾸려고 하는 거야."

 

 정말 바뀌고 싶다면, 이런 상담 조차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이런 상담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는 이미 주저하고 있다는 거 아닌가? 손에서부터 컵이 빠져나갔다. 덜그럭. 그런 소리가 났었던가? 시간이 늦었어. 난 이만 가겠다. 뭐? 자, 잠깐, 무슨 폭탄 발언을 하고 혼자서⋯ 어이, 야! 잠시만! 롤로노아, 너! 술집에 홀로 남겨진 쿠지라는 그 후로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이라도 꿰뚫린 듯한 감각이었다.

 

나는⋯ 나는 뭘 하고 싶은 거지? ⋯관망이라니, 그건 무슨 말이야?

 

쿠지라는 원인불명의 통증을 느꼈다.

 

 

 

 

 

 Step 4. □□의 법칙

 

 

 ―부상합니다!

 

 급박한 목소리가 울린다. 그와 동시에 다급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에 따라 쿠지라 또한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해적단의 공격. 그에 따라 대응하는 것이 임무. 보나 마나 별 볼 일 없는 놈들이 괜히 현상금을 노린답시고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들이대는 것이겠지만, 쿠지라는 가볍게 혀를 찼다. 그 섬에서 롤로노아를 만난 지도 벌써 일주일 후였다. 그만한 시간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말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하지 못한 상태. 나아가기를 주저해? 내가? 지금 이 상태에서 관계가 바뀌지 않았으면 한다고? 아니, 나는 그냥⋯⋯ 전하는 게 어려울 뿐이라고. 사랑하게 되면 좋지, 당연히 좋은 거잖아. 사랑하게 되어버린 이상, 서로의 사랑을 원하게 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쿠지라는 생각한다.

 

사랑에는 발전이 존재하는 법이고. 암, 그렇고 말고. 그런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바뀌지 않길 바라고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롤로노아, 통찰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부분에서는 영 아니구만. 그래, 그런 목석같은 녀석에게 애초에 사랑이니 뭐니 운운하며 상담을 받고자 했던 것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했어. 샤치가 알았다면 상담할 대상을 잘못 골랐다면서 한참을 웃어버릴 일이 분명했다. 그리고 몸이 기운다. 엥?

 

 "⋯쿠지라! 부상한다니까, 뭘 멍때리고 있는 거야!"

 "아, 오, 어. 미안. 땡큐, 잇카쿠 쨩!"

 

 자신을 붙잡아주고서는 또 바삐 뛰어가는 잇카쿠를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그래, 정신 차리자. 자꾸 뭐 하는 거야, 진짜⋯⋯ 뭘 하고 싶은 거냐고, 나는. 이래서야 롤로노아의 물음으로 되돌아갈 뿐일 터인데. 나는 대체 뭘 하고 싶은 건가. 이 사랑을, 상대방을, 나는 지금 어떻게 하고 싶길래 그랬던 건지. 굳이 불필요한 상담 따위의 것들을 반복해나가면서 내가 얻고자 했던 답은 무엇인지. 갑작스레 선로를 잃어버린 기차는 금방 탈선해버리고 마는 것. 이는 당연한 이치다. 탈선한 열차,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은 단 하나. 길을 잃어버린 자는 대체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답을 해줄 이는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잠깐. 생각을 그만 하라니까. 아까도 한 소리 들었으면서 자꾸 왜 이러는 거야? 야, 어이. 정신 좀 차리자, 너는 지금 싸움의 한 중간에 있고, 전투를 하는 중이야. 그런데 딴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이게 되겠어, 안 되겠어. 어디 가서 예전에 잘 나갔던 사람이라고는 말도 못할 정도로 창피한 일이라고, 이건. 자, 정신 차리자. 싸움에 집중해. 지금 네 눈앞을 봐. 네가 봐야 할 건 그런 감정의 흔적이 아니라 싸움의 현장이라고, 알아듣겠어? 그럼 들고 있던 무기를 고쳐 잡고, 지금에 충실하게⋯⋯

 

 '어느 쪽도 바뀌길 원하지 않으면서 뭘 바꾸려고 하는 거야.'

 "―쿠지라!"

 

 젠장. 몸을 관통하는 격통과 함께 정신이 일순간 깜빡인다. 아, 이제 어디서든 고개는 못 들고 다닐 것이 분명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 이름을 부른 쪽을 향해 손짓한다. 안 와도 괜찮음. 그리고 숨을 내쉰다.

 

 "야⋯ 덕분에 정신은 차려졌네. 고맙다, 야."

 

 이젠⋯⋯ 됐다⋯ 그냥. 종극에는 그런 생각이 들고 말았다.

 

 

 

 

 깜빡. 눈을 뜬다. 보이는 하얀 천장⋯ 은 아니고, 익숙한 폴라탱 호의 천장. 몸을 일으키면 옆구리 부근이 욱신거려서 저도 모르게 웃긴 소리나 내면서 다시 누워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거 하나에 쓰러졌다고⋯⋯ 진심이냐. 쿠지라 실력 다 죽었네. 아니, 나 그 정도로 다쳤었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닥친 현실에 대해서는 꽤 가볍고 쉽게 수긍했다. 이제 와서 부정한다고 한들 바뀌는 것 하나 없는 것이 당연한 현실의 일부였으니까, 아무래도.

 

정신을 차리니 씁쓸함이 피어오르는 기분이 생생하다. 단순한 감정놀음, 그것 하나로. 솔직히, 그래. 나는 주저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바뀌지 않기를 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왜, 어디에선가 봤던 책에는 그런 문장이 적혀있지 않은가. "사랑을 고백한 이후 벌어질 것들이 두려워 나는 차라리 영원히 이런 관계가 이어지길 바랐다⋯" 같은 문장. 나는 그 문장에 동의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리고 어쩌면, 아니⋯ 확실하게. 펭귄 또한, 그렇겠지. 막상 그리 받아들이자니 그렇게까지 격한 감정이 휘몰아치지는 않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그리 절망스럽지도 않았다.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도 더 오래 전부터 이것을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심하다, 한심해! ⋯진짜 한심하다. 고작 이렇게 종결이 나버릴 감정을 그렇게나 긴 시간 동안 질질 끌고 살았었다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일이었다. 이렇게 끝내버릴 거면서, 이런 식으로 끝나버릴 거면서, 목숨인지 뭔지 다 바칠 것처럼 열렬하게 사랑하여 제 모든 인생과 지금까지의 것들을 던져버리고 맨 몸으로 뛰어내렸나. 고작 이런 것으로. 고작 이렇게 끝날 것으로. 내 사랑은 고작 이런 것이었나. 그리 생각하자니 코끝이 찡해졌다. 자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자꾸 이 거추장스러운 건 뭐⋯⋯⋯⋯⋯⋯"

 

 눈이 마주친다. 아니, 그러니까. 사람 눈 말고. 매번 보던. 익숙한 그거. 그러니까. '모자'의 '펭귄'과 눈이 마주친다.

 

 

 "⋯⋯⋯펭귄?"

 

 순식간에 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갑작스레 머리가 웅웅 거리며 흐릿한 기억이 떠오른다. 수혈팩이 부족합니다! 어쩌죠? 캡틴은 지금 상대측 배에 계셔서 부를 수도 없는데! 그리고 뚜렷한 목소리. 내가 수혈할게. 괜찮지? 픽. 장면이 꺼진다. 눈을 끔뻑인다. 다시 장면이 떠오른다. 팔에 달린 거추장스러운 감각, 옆구리의 격통, 그리고, 팔에서부터 팔로 이어지는, . 감히, 감히 쿠지라가 이 장면에 대해 하나 말을 얹자면, 사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그것을⋯ 운명의 실로 생각하고 싶었다. 우습게도. 참 우습게도.

 

 '쿠지라.'

 

 엎드린 채 숨소리를 내뱉는 머리통을 내려다본다.

 

 '이상한 생각이나 하면서 이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뭐라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지.'

 

 새까만 시야 속에서 그런 목소리만 울렸던 것이 뒤늦게 떠올랐다.

 

 '너 말야,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고, 쿠지라!'

 

 고개를 푹 숙인다.

 

 

 ⋯⋯⋯미쳤나 봐, 진짜.

 

 마음도 없으면서 이런 식으로 여지를 주는 건 불법이 아닌가? 세상에 그렇게 정해져 있지 않던가? 순식간에 타오르는 얼굴이 뜨거웠다. 누군가 말하더라. 사랑은 더 사랑하는 쪽이 지는 거라고. 그냥 무시하면서 지냈는데, 그 말이 맞는 듯싶다. 사랑은 더 사랑하는 쪽이 지는 거였다.

 

 

 

 

 

 Step 5.

 

 총량의 법칙. 줄 찍찍.

 사랑의 법칙. 동그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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