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GREY
돈키호테 로시난테
원피스
#C8D4E0
白夜
네가 있는 곳은 온통 가짜고 가득하고
무구한 이들이 네 술수에 속아 넘어가지만, 나는 알고 있다.
굽이치는 물결의 색이 바랜 잿빛이라는 것을.
투명한 생명수엔 실은 잿가루가 섞였고, 미래와 낭만을 약조한 과실은 썩어 문드러졌다는 걸.
무른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빚어낸 육신이 무대 위를 종횡무진하지만, 그건 사람의 형체를 뒤집어쓴 것은 유령이다. 욕망과 아집이 부드러이 조각된 천 안을 채우고 있을 뿐.
이브, 너는 네 안위만을 위해 노래하지. 네 자유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다른 누가 진창에 처박혀 빌어먹든 하등 관계가 없다는 듯이. 비열한 삶을 사는 건 어떤 기분이냐.
조명을 가리키곤, “저것은 태양이오.” 선언하는 네 말 따위를 믿어줄 순진한 천치는 세상에 널렸다.
그럼에도 나는 네 거짓말 따위에 어울려줄 수 없는 남자라. 빌어먹을 정도로 진실과 허위를 판별하는 데 익숙한 군인이어서. 어쭙잖은 동정만으로 너를 안아 보듬기엔 내가 이다지도 의로운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래, 해가 영영 지지 않는 밤을 네 손으로 이루는 날을 얼마나 벅차게 기대해 왔는지 안다. 너의 모든 이상의 현현이 이제 한 발짝 앞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도. 네가 비정한 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나는 유보해 두었던 사랑을 서슴없이 불태우게 되리라는 것도. 그 모든 결과를 네 간교한 머릿속으로 계산해 이미 값을 매겨두었다는 것마저도. 알면서 나를 버리려는 것조차 모조리 간파하고야 말았다.
그런데도 왜 자꾸 미련이 남는지. 너를 왜 사랑하고 싶은지.
가령, 다른 모든 이들이 네 가명을 부르며 추앙할 때, 왜 나만은 힐난할 때 되뇌는 네 진짜 이름을 불러 내 품속으로 가둬버리고 싶은지. 의문에 대답을 바라지 않고 회피하는 것마저 부질없다.
어때, 밀어를 속삭인 이 비열한 배신자. 나는 결국 사랑에 패배하였다. 너는 나보다 더 오래도록 부정하겠지. 종국에 재앙 같은 사랑에 무릎 꿇을 테지만, 나는 너보다 먼저 고개 숙여 항복했기에. 그렇게 너를 상대로 승리한다.
그러니 비비얀로드, 말해봐.
그 모든 거짓을 뒤엎어 쓰고서 네가 진정 자유로운 게 맞나?
회색 조의 감옥에 갇혀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끝없이 정제하는 네 몸짓이, 마치 실에 매달려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여서. 네 것은 하나도 없이 온통 남의 깃털을 가져다 치장한 것마냥.
내가 자비를 베풀 수도 있잖아.
네 말 한마디만으로, 나는 얼마든지 네 손목을 낚아채
널 무대에서 약탈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는 늘 내게 녹다 만 눈처럼 확고하지 못한 불가해로만 남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