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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GREY

로브 루치

원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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沒刻

 

 

 

홀로 빛나시는 고고한 분께서는 더러움이라곤 하나도 모르실 텐데, 어찌 이런 난잡하고 교활한 폭도들 사이에 끼셨을까.

 

너는 공공연한 배척자이다. 비밀 첩보 조직 간 눈감아주듯 공유받은 밀정이자, 네가 표방하는 결벽함을 보장받지 못할 도구이다. 네 등에 지고 살아갈 정의라는 글자는 까맣게 칠이 되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다. 네 가슴에 새긴 것은 푸르게 지속될 테지만 고작 기록으로도 남지 못할 이념을 누가 알아주기나 하던가? 값을 쳐줄 이는 없다.

 

당사자, 네가 이 자리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너와 나 모두 인지하는데도, 너는 입을 조개처럼 딱 다물고서 분명 저지르고 싶지 않을, 무도하고 설익은 살인을 무참히 반복하는 중에도 전혀 저어하는 기색이 없다. 네 정의관에 부합하지 않을 추악한 사건의 연속을 마주하고서도.

 

온통 검은 것들 사이에 은빛 투명한 것이 섞이면, 대개 후자의 것이 물들어가곤 하는데. 너는 그 하얀빛의 코트가 지니는 상징성이 무색하게도, 네가 무슨 구도자라도 되는 양 겸허하고 단정한 얼굴로 떨리지도 않는 손끝으로 살가죽 사이로 비수를 박아 넣는다.

 

너, 살인을 희열 쾌락 추구의 수단으로 삼는다고 힐난당한 내 만행과 네 과업을 달성하기 위한 위악이 낳은 결실이 무엇이 다르지?

 

본인이 저지르는 행흉이 어떤 숭고한 사명이라도 되는 양 의연하고 순결하게 구는 꼴이 우습다. 네가 무슨 청렴결백한 사제라도 되는 것처럼 성물에 대고 기도하지만, 실은 고작 허울뿐인 위선으로 자기 위안 삼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어차피 너, 사람 죽이는 일에 거리낌이 없지 않나? 사람이 숨 쉬든 쉬지 않든, 너는 관심이 없지. 네 극단적인 신의 교리와 기준에 따라 모두 타락하고 모독적이라 무너뜨려야 할 말로 여기고 있지 않나.

 

순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야 하는 건 너다.

무정한 붙박이별,

너는 그대로 못 박혀 죽어야 한다, 폴라리스.

 

네 빛깔이 희었다가 검게 물들었다 다시 희게 물이 빠지더라도, 백지는 칠하는 것 나름이기에 같은 의중을 품을 수 없다. 너는 우리에게 오기 전처럼 살아갈 수 없을 테다.

 

너는 해군으로 죽지 못할 테다. 온갖 잡스럽고 험난한 비밀을 뒤집어쓴 채 모욕당할 테다. 비밀스러운 임무라는 허울 좋은 말 따위로 난도질당해, 네 이름도 얼굴도 전부 지워진 채로. 아무도 널 구제하지 않는다. 네 개죽음은 어디에도 전달되지 않고서 종이 한구석에 단어 하나로 적히고 불살라질 테니. 함구된 사망자가 돌아갈 자리는 없다.

 

너는 하루하루 순례자처럼 살아가지만, 죽음으로 기어들어 가는 꼴이다.

그걸 순교라고 부를 테냐?

 

넌 위악이라고 주장할지언정 네가 행한 것은 곧 악행인데, 찰나, 마치 일견 대단한 신실함이라도 엿보기라도 한 것처럼 네 행위를 긍정하는 시도가 오히려 신성모독적인 귀결 아닌가. 어리석게 왜 사장된 당위를 고수하려 하지? 고작 네 흔들림 없는 이상을 위해서?

 

아 강퍅하고 창백한 유물. 너는 이지적으로, 희게 빛나며 하늘을 쏘아본다.

감히, 감히 말이다! 네가 우리와 뭐가 다르지?

나는 네 발목을 잡아 끌어내리고 싶어 죽겠다, 소냐.

 

흰 별이 진창으로 떨어지는 꼴, 제법 볼만하지 않은가.

LADY GRAY-로브 루치 합작.b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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