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든 머리를 대기만 하면 자는 능력도 일종의 재능이라고, 다이무스 홀든은 새근새근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이번에 소피아를 발견한 곳은 창가의 은신처였다. 소피아는 구석진 곳에 푹신한 쿠션을 놓고 자기만의 성을 구축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 성을 보고 있노라면, 다이무스는 베개와 이불 시트를 의자 위에 덮어서 놀았다는 아내의 어린 시절을 슬쩍 엿볼 수 있었다. 소피아는 예나 지금이나, 사랑스러웠을테다.
언제부턴가 소피아는 마음에 드는 창가에는 단단한 서랍을 놓고, 그 위에 이불을 깔아둔 뒤, 쿠션과 본인의 몸통만한 인형을 두어 개 가져다 두었다. 깔끔하고 효율적인 구성을 선호하는 다이무스에게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취향이었지만, 소피아가 편안한 얼굴로 창문 밖을 바라보거나 책장을 팔랑팔랑 넘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늘의 소피아는 이르게 퇴근한 남편에게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잠들었다. 평소라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응하여 자신을 마중 나올 소피아였을 것을 알기에, 다이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 무릎 꿇어, 평온한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요 며칠 동안 젊은 홀든 부부를 찾는 이들이 끊이질 않았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들은 소피아를 보고 싶어했다. 유럽 최고의 검사, 명망 있는 홀든 가문의 후계자, 이름 있는 집안이라면 탐내던 사윗감인 다이무스를 사로잡은 “신데렐라”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썩 호의적이라고 할 수 없는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소피아는 쏟아지는 관심과 호기심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미 결혼한 걸 어쩌겠어요, 그렇게 농담하던 그녀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 대신, 다이무스의 곁에서 그린 듯한 미소로 주변에 자기 존재를 새겨넣고 ‘이상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그야말로 그녀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가장 무결한 홀든 부인이었다.
소피아는 다이무스의 손을 잡았을 때부터 일이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이무스의 이름 뒤에 붙은 단어는 단순히 성씨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었고, 그의 집안이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 전부터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단어였다. 그러나 각오했다고 해서 호시탐탐 자신에게 흠집을 내려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의 낮잠은 몰아치던 피로함의 결과물이었다.
다이무스는 저녁 햇살이 창문 안으로 들어오며 소피아의 둥근 이마를, 부드럽게 휜 코를, 살짝 벌어진 입술을 훑어내리는 광경을 눈에 새겼다. 몇 시간 후면 두 사람은 또다시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흘러넘치는 곳으로 향해야 했고, 소피아는 또다시 그린 듯이 반듯한 미소를 얼굴에 그어놓을 것이다. 그는 가끔, 소피아가 더는 버틸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상상을 했다. 사랑하는 여인이 생기를 잃어버리고 눈동자에는 서글픈 우울함을 담은 채 공허하게 속삭이는 장면이 은밀한 두려움과 함께 떠올랐다.
그런 날이 온다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이무스는 아직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소피아가 눈을 떴다. 길게 늘어지는 햇살이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으며 녹음의 눈동자를 한층 더 선명하게 빛나게 했다. 반짝이는 눈매에 금빛이 고이고, 풍성한 눈동자에 위아래로 가볍게 나부끼는 걸 보던 다이무스는 어쩐지 시간마저 길게 늘어지는 것 같은 기분에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인간의 인지는 거대한 아름다움 앞에 실낱처럼 허공에 날아갔다. 다행히 소피아는 남편의 무언에 평소와 다른 바를 읽어내지 않았다. 그녀는 눈가를 슬슬 비비며 중얼거렸다.
“…어서 와요. 내가 너무 오랫동안 잠든 건 아닌가 몰라요.”
“그렇지 않다.”
소피아가 말을 시작하자, 다이무스의 시간도 함께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는 피곤함에 해쓱해진 아내의 볼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주었다. 잠에서 깨어난 직후라 손가락 끝에 닿는 온기가 유난히 따끈했다. 이대로 소피아가 쉬게 하고픈 욕망이 불쑥 앞서나가, 문장이 되어 굴러나왔다.
“피곤하면 오늘은 집에 있어도 된다.”
그러자 소피아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다이무스는 천천히 말을 고르는 아내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도톰한 입술 사이로 영문 모를 말이 흘러나왔다.
“오늘 페니커 제독 부부도 오시잖아요. 그럼 갈래요.”
문장이 온전히 끝났는데도 제독 부부의 참석과 소피아의 결단 사이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수 없던 다이무스가 조용히 있자, 소피아가 까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명랑하고 발랄한 음색이 주변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오, 다이무스. 그렇게 속삭인 소피아는 남편의 머리카락을 살살 만져주며 설명했다.
“그분의 아내 보셨어요? 이번 시즌 카탈로그에서 주목받는 거라면 전부 사시는 거 같더라고요. 목걸이든, 귀걸이든, 모자든.”
다이무스는 아내의 손길이 머리카락을 헤집다가 내려와서 얼굴에 난 흉터를 덧그리는 감각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소피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런 분이 참석하는데 새파랗게 어린 ‘신데렐라’가 안 간다? 완전히 눈 밖에 날 게 뻔하다고요.”
아, 나는 당신이랑 결혼했으니 신데렐라보다는 아셴푸틀(Aschenputtel)일까요? 그렇게 농담하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이무스는 소피아의 손을 잡아, 그 통통한 손등에 입술을 가만히 대었다. 순식간에, 그가 혼자 몰래 고민하던 걱정이 기우로 녹아내렸다. 그의 아내는 다이무스 홀든이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굳건하고 단단하고, 쉬이 무너지지 않는 여인이었다. 알겠다. 남편의 대답을 듣고 바로 일어나려는 소피아의 손을 놓지 않으며, 다이무스가 나지막이 부탁했다.
“…조금만, 이렇게 있도록 하지.”
저녁 햇살은 나른하리만치 따스했고, 부부는 잠시 동안 그 여운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