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나
저팔계
최유기
#48e254
산옥은 항상 팔계를 볼 때마다 그러한 생각을 하곤 했다. 어떻게 하면 따스한 색을 지닌 이가 매섭도록 서늘한 기운을 안겨 주는지 말이다. 어쩌면 그가 살아온 삶 속에 온갖 감정들이 하나로 응고되어 나오는 게 아닐까.
산옥이 물끄러미 침대 옆 빈자리를 보았다. 그는 자리에 없었다. 잠시 장을 보러 다녀온다고 했으니 오래 자리를 비우지는 않을 것이다. 침대에서 벗어난 뒤 방을 나섰다.
“산옥!”
“오공 씨. 뭐 하고 계세요?”
“이거 봐.”
뭐지. 산옥이 오공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연둣빛 이파리였다. 노란빛과 초록빛이 적절히 섞인 색상. 묘한 기분에 손을 뻗어 이파리를 건드렸다. 작은 움직임에도 이리저리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는 모습이 꼭 누군가를 닮아 보였다.
“무슨 이파리일까요?”
“글쎄? 먹는 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걸!”
식용 식물이 아니라 모르겠다는 오공의 이야기에 산옥이 웃었다. 이번에 머무는 숙소 주인이 식물에 관심이 많은지 온갖 식물을 기르고 있었는데, 아는 것만 아는 산옥으로서는 제 눈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지니고 있는 빛이 자신을 사로잡고 있었다.
장을 보고 돌아왔어야 하는 시간이 되어서도 팔계는 돌아오지 않았다. 예상치 못하게 지연되는 복귀에 산옥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삼장과 오정이 정신 사납다며 지적했지만,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때였다. 창가에 있던 그 식물이 빗물에 젖어 들고 있었다.
“나갔다 올게요!”
“야, 길치가 어디 가!”
길을 잃어버려도 좋았다. 중요한 건 빗물 속에 사랑하는 이를 그냥 둘 수 없다는 마음은 항상 산옥을 반응하게 했다. 그가 빗속에서 뛰었다. 팔계의 이름을 부르며 한참을 뛰어다녔을까. 누군가 산옥을 막아 세웠다. 고개를 들었다. 익숙하지만 차분히 가라앉은 눈, 온갖 감정이 담기다 못해 억누르고 있는 그런 눈. 이름을 부를 새도 없이 휘감겨진 팔에 산옥이 눈을 감았다. 연인의 격랑을 함께 견디고픈 마음뿐이었다. 꽤 긴 시간이 지나도록 둘은 말없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